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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사춘기 글 : 박혜선 그림 : 백두리 출판사 : 사계절 / 96쪽 발행일 : 2021-02-10

저마다 시기는 다르지만, 어린이가 ‘문을 닫는’ 때가 찾아온다. 방문을 닫기도 하고, 말문을 닫는 행동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어른들은 으레 사춘기라 그렇다고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그 쉬운 단정은 자칫 어린이라는 존재, 어린이의 마음을 단순하고 납작하게 정의한다. 하지만 어린이에게 닫을 문이 생겼다는 것은 자기만의 세계가 생겼다는 의미다. 닫아건 문의 안쪽, 언뜻 고요해 보이는 그 마음속에는 수많은 말과 감정들이 가득하다.

『바람의 사춘기』는 한국아동문학상, 소천아동문학상 수상 작가인 박혜선 시인이 오랜만에 내놓는 동시집이다. 박혜선 시인은 십여 년간 전국의 어린이들이 보내온 동시를 읽고, 함께 읽을 작품을 골라 어린이신문에 싣는 일을 해 왔다. 그런 그가 보여 주는 ‘사춘기’ 언저리의 시적 화자는 종일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한 감정 변화를 고스란히 느끼면서도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스로를 탓하기도 위로하기도 한다. 또한 어른들이 구획한 일상 속에서도 오롯이 세상을 바라보고 함께 사는 존재들을 생각한다.

『바람의 사춘기』에는 수년간 어린이들을 바라보고 이야기 나누며 체득한 이해와 존중의 태도, 가르치지 않으면서도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고르고 고른 시어가 담겨 있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에게 같은 경험을 가진 누군가의 마음이 담긴 시에 공감하고, 그 시를 통해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문학적 경험을 선사한다. 또한 ‘공감’이 얼마나 큰 위로와 동력이 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2019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수혜작.

출판사 리뷰

종일 마음에 바람이 부는 듯한 어린이들에게 보내는 위로

아무것도 하기 싫다/사과나무 가지에 누워 자고 싶다
“오늘은 바람이 잠잠하네.”/“그러게 바람 한 점 없네.”
과수원 나온 아저씨 아줌마가 하는 말까지/잔소리 같아 짜증 난다
벌떡 일어나 사과나무 한 번 흔들어 줄까 하다가 관뒀다/그냥 다 귀찮다
-「바람의 사춘기」전문

표제작 「바람의 사춘기」는 지금 사춘기 한가운데 있는 독자도,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독자도 고개를 절로 끄덕일 만한 시다. 사춘기의 마음이 그렇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무슨 일이든 저지르고 싶다. 왜 그러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이유는 없다. 이 시집에 담긴 ‘찰떡’ 같은 비유는 독자를 위로한다. 어린이 당사자만이 아니라 ‘남의 집 닫힌 문엔 전문가면서’ 어린이가 닫은 ‘방문 앞에서 쩔쩔 매(「전문가」)’ 보았던 어른도 마찬가지다. 그 이유는 ‘사춘기’라는 통과의례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시인의 시선에 있다.
시인은 저도 모르게 방문을 세게 닫은 어린이의 마음을 ‘바람에 흔들리던/나무의 습관//문이 되어서도/버리지 못(「습관」)’한 문의 이야기로 감춰 주고, 누구도 몰랐으면 하는 비밀(「비밀 저금통」)과 불쑥 마음속에 자리를 차지한 존재에 대한 설렘(「관계자 외 출입금지」)이 공존하는 것도 당연하다고 말한다.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시기라고 해서 모두의 마음에 같은 바람이 불 리 없다. 시인은 경험자라는 이유로 ‘우위’에 서서 정의하거나 쉬운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겸허하고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가르치지 않고 소통하려는 마음, 불안정한 시기의 어린이들을 다독이는 마음이 모든 행간에 담겨 있다.

어린이 마음에 가득 쌓인 말들, 시가 되다
소리 내어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에게도 하기 싫은 말, 차마 하지 못한 말,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은 말은 저마다 그 무게도 색깔도 다르다. 『바람의 사춘기』는 어린이 마음속에 감춰진 말들의 다양한 결을 섬세하게 살핀다.

친구들이 몰아세울 때 아무 말 못 해서 미안해/계속 툭툭 치는데도 그냥 참아서 미안해/학교 혼자 가고 혼자 오게 해서 정말 미안해/무슨 걱정 있냐고 묻는 엄마 앞에서/아니라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거짓말해서/정말 정말 미안해
-「나에게 사과하기」 중에서

「나에게 사과하기」의 화자는 차마 하지 못한 말들을 되짚어 본다. 그런데 타인을 원망하거나 자신을 탓하기보다, 나에게 사과하고 다독이는 것이 먼저다. 또 다른 화자는 ‘구겨진 마음’을 다리고, ‘얼룩덜룩 묻은 눈 흘김’을 닦아 내고, ‘달라붙은 말 먼지’를 털어 내기 위해 ‘나의 세탁소’인 노래방을 찾는다.(「나는 세탁소에 간다」) ‘고작 한 살 더 많으면서/꼬박꼬박 나를 무시하는 언니’의 재작년 사진을 꺼내 ‘나보다 어린 게 어디서 까불어.’ 따끔하게 혼내고(「언니에게 화를 내는 방법」), 일상이 답답할 때는 비상구 표지판 속 초록 사람에게 ‘나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탈출구가 필요해」) 하고 손 내밀어 본다.
시 속 아이들은 외로워하고 슬퍼하며 자신감을 잃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탓하지 않고 억눌린 마음을 해소할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다. 그 방법에 공감하는 독자도, 그럴 수 없는 독자도 있겠지만 그 모든 과정이 ‘왜 시를 읽고 쓰는가’에 대한 시인의 대답일 것이다. 『바람의 사춘기』를 통해 어린이 독자들은 시 속 아이의 마음과 나의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그 마음을 깨끗이 비워 내고, 다시 채울 나만의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바람의 사춘기』에는 십여 년간 어린이들이 직접 쓴 시를 읽고, 동시 교실을 운영하며 어린이와 시로 소통해 온 박혜선 시인이 ‘어린이의 시선’으로 본 세상이 담겨 있다. 그 어린이는 주변인으로 물러서거나 대상화되지 않은, 세상의 당당한 구성원이다. 어른들이 구획한 일상 속에서도 자기만의 속도로 걸으며 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고, 느끼고, 기억하는 존재다.

학원 버스 기다리며/편의점에서 라면 먹는다/파란 조끼 아저씨/내 옆에서 라면 먹는다/창밖에 눈발 날리는데 4시 45분을 달리는 시계 보며 라면을 먹는다//“예, 그럼요. 지금 몇 신데 아직 점심 안 먹었을까 봐. 예예. 여기도 조금씩 날려요. 엄마, 저 운전 중이니까 나중에 전화할게요.”/전화를 끊으며 면발도 끊으며/아직 반이나 남았는데 바삐 나간다//창밖, 택배 트럭이 떠나는데/눈이 내린다/나를 태울 수학 학원 버스가 오는데/눈이 내린다/빈 그릇을 치우고 뛰어가는데/첫눈이 펑펑 내린다
-「첫눈 내린다」 전문

「첫눈 내린다」는 출간 전 사계절출판사 SNS를 통해 공개되어 독자들의 큰 관심과 공감을 얻었다. 어린이는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에서 동떨어져 있지 않으며, 오히려 어린이의 시선이야말로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야 할 가치에 가까이 있다. 어린이는 커다란 마트에 밀려난 동네 철물점 간판이 내려지는 순간을 지켜보고(「창원 철물」), 자동문에 밀려 떠난 경비 아저씨의 부재를 실감하며(「자동문 약 올리기」), 옷 속 라벨의 거위털 함유 표시에서 살아 있는 거위를 떠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거위는 죽어서」). 또한 『바람의 사춘기』는 그러한 어린이의 시선을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핵실험장 폐쇄 뉴스에(「완전 유명한 동네 되었다」), 질곡한 역사에 의해 한국과 일본, 러시아 이름으로 불리고도 아직 고향에 돌아오지 못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어떤 무덤」), 동시대인으로서 마땅히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억하는 누나의 노란 리본에 가 닿게 한다.(「함께」) 시인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거나, 보고도 지나쳐 버리기 쉬운 존재들을 응시함으로써 어린이들에게 더 넓게, 더 깊이 바라보는 법을 알려 주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동시대 어린이의 눈에 비친 세상을 담백하게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어른 독자들에게 우리가 무엇을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도서 내용

우리가 나누는 말과 말 사이에는 수많은 감정이 있다. 어린이들의 말에도 마찬가지다. 어린이들은 말과 말 사이에 수많은 생각과 마음을 넣어 본다. 기뻐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동화작가이자 동시인인 박혜선의 새 동시집은 행간을 짐작하고 예민해지는 사춘기 어린이를 시적 화자로 한 작품들이다. 온종일 바람을 맞는 듯한 시기인 ‘사춘기’ 독자들은 시에 담긴 심상에 공감하며 위로받고, 시의 행간을 음미하는 ‘시 읽는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글작가
박혜선
그림작가
백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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