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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 글 : 송진권 그림 : 정인하 출판사 : 문학동네 / 112쪽 발행일 : 2019-09-27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있는 것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있는 것
그 어떤 것을 모아 모아

양 손바닥 두 장을 합한 것만 한 이 동시집 상자엔 무엇이 들었을까? 그것은 어떤 것. 할머니가 유모차에 태운 늙은 개, 아이가 현관에 붙여 놓은 공룡 스티커, 김밥집에서 거슬러 받은 돈에 묻은 참깨알, ‘릇’이라는 한 글자, 반딧불 같은 것들. 사물은 다만 사물 하나만이 아니며, 그 날갯죽지 아래 기억과 이야기가 깃들어 산다. 어느 집 문의 다닥다닥한 스티커에는 그 스티커를 붙이며 놀았을 어떤 아이들의 시간과 보물 스티커가 꽤나 소중했던 우리의 유년 시절도 함께 붙어 있다.

시인은 “어떤 사람에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만 어떤 사람에겐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것, 세상에 없지만 어떤 사람에겐 여전히 있는 어떤 것,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딘가 있는 것”들을 살뜰히 마름질해 이 상자 안에 넣었다. 그리고 우리에게 손짓해 상자 앞으로 부른다.

출판사 리뷰

도깨비가 숨어 사는 말과 선풍기 바람에 토막 난 말들이 함께 있는 곳
송진권 시인의 두 번째 동시집

송진권 시인은 2012년 동시전문잡지 『동시마중』에 「새 그리는 방법」과 「강아지풀 수염 아저씨랑 바랭이풀 우산 아줌마랑」을 발표하며 동시의 머릿돌을 놓았다. 채 어른이 되기도 전에 어른들의 세상에 놓인 어린 나, 이쪽 세상에도 저쪽 세상에도 놓이지 못한 채 잔뜩 겁먹은 짐승처럼 털을 곤두세우고 있는 나를 달래 주고자 쓰기 시작한 동시는 2014년 『새 그리는 방법』으로 묶여 나왔다. 첫 동시집이 사람과 자연과 우주와 신성이 교감하는 지난 시공간을 생생히 복원해 냈다면 이번 동시집 『어떤 것』은 현재의 시공간에 자리를 좀 더 내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김 굽는 냄새를 맡으며 아궁이 앞에 쪼그려 불을 쬐던 정지(부엌)에서 나와 털북숭이 괴물이 데굴데굴 굴러오는 자동 세차장에 안착했다.

처음 동시집을 냈을 때 초등학생이었던 두 자녀가 중학생이 되는 사이 시인은 그들과 함께 학교 운동장으로 시끌벅적한 교실로 뛰어다니며, 또 액체괴물을 치대는 마음과 돌아가신 할아버지 사진 옆에 제 사진을 걸어두는 마음을 넘나들며 ‘어떤 것’들을 끌어 모았을 터. 아이 독자에게 한 뼘 더 가까워진 셈이다. 그러나 송진권 시인은 여전히 이안 시인의 말처럼 “기억의 수호자이자 생생한 표현자로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추방당하고, 그리하여 어쩌지 못하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세계를 우리 곁으로 불러내 우리와 함께 있게 한다.”

송진권의 시와 동시에는, 백석의 시와 류선열의 동시가 들어와 있다. 송진권이 그 둘을 끌어들였다기보다 백석과 류선열이 그를 통해 여전히 현재에 살아 있다고 해야 더 옳을 것이다. 송진권은 기억의 수호자이자 생생한 표현자로서 우리가 잃어버리고, 빼앗기고, 추방당하고, 그리하여 어쩌지 못하고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세계를 우리 곁으로 불러내 우리와 함께 있게 한다. 우리가 송진권 문학의 공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은, 그 속에 우리 공동체가 미처 치르지 못한 애도 의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_이안(시인)

우리가 사는 곳 저편의 반짝이는 세계로 잠시 데려가 줄 동시 상자

산업사회로 빠르게 진입하면서 우리가 버리거나 두고 온 어떤 것들을 만났으면 합니다. 고리타분하거나 케케묵은 것일 수도 있지만 대다수가 아직도 기억하고 있을 공동체의 기억과 가치들을 한 번쯤 상기해 주었으면 합니다._송진권

그 바람으로 시인은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나(「누구지?」) 百에서 빠진 하나(「白」), 별자리를 만드는 까마득이의 후손들(「까마득이」)을 이 상자에 쟁였다. 구전설화와 민담이 녹아든 이야기동시의 주인공들 또한 차곡차곡 쟁였다. 이 동시 상자를 받은 아이들은 친근한 사물들 속에 파르름하니 이마를 내민 신기한 것들을 손에 쥐어 볼 것이다. 우리 곁을 이미 스쳐갔지만 없는 채로도 아직 우리 안에 사는 어떤 것들을, 언젠가는 오뚝하게 고개를 들고 우리를 데워줄 어떤 것들을, 우리가 사는 곳 저편의 반짝이는 세계로 잠시 데려가 줄 어떤 것들을. 그리하여 우리는 우리의 상자를 가다듬어 볼 일이며, 누군가의 어떤 것으로 간직될 꿈을 꾸어 볼 일이다.

개가 죽고
감나무 밑에 빈 개집
빈 개집 앞에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바닥이 반질반질한
개밥 그릇만 놓였습니다

빈 개집을 들여다보던 할머니가
개밥 그릇에 떨어진 땡감을 주워 듭니다
할머니가 빈 개집 안을 들여다봅니다

꼭 꼬리 치며 나올 것 같아서
컹컹 짖으며 드러누울 것 같아서

없는 개는
없는 개지만
없는 채로도
아직 개집 안에 삽니다

「없는 개」 전문

흘러내려요
주르르르 흘러내리다
바닥에 닿으면
발이 생기고 꼬리가 생기고
머리와 뾰족한 귀와
구슬 같은 두 눈과
야오오옹이 돋아나요

늘어나요
지이이이익
고무줄처럼 기일게 늘어났다가
원래대로 줄어들면서
얼룩무늬와
갸르릉 갸릉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생겨요

떨어져요
톰방톰방
꼬리 머리 귀 다리 콧수염이
조각조각 떨어지다가
하나로 붙어
고양이로 일어나 기지개를 켜요

「고양이는」 전문

어떤 것의 희미해진 잔상마저 도탑게 살려내는,
한 장 한 장 다시 한번 뒤적여 보게 하는 그림의 힘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 사람들 안에 자리 잡은 어떤 것을 붓으로 끌어내는 걸 제일 잘하는 화가 정인하가 그림을 그렸다. 『밥?춤』 『부드러운 거리』의 흥과 다정한 일상성, 『뭉치와 만도 씨』의 유머와 사랑스러움, 『내 심장은 작은 북』에 심장 고동을 함께 달아 주었던 그림의 힘이 『어떤 것』에 담겼다. 어떤 것들의 희미해진 잔상들마저 또렷하게, 도타운 것으로 살려내는 그의 그림은 이 동시집의 재미를 찾아 다시 한번 차분한 호흡으로 뒤적여 보게 한다.

글작가
송진권
그림작가
정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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